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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甲午) 2014년 새해를 맞아                

송곡동 별좌공 후손 앞앞 편지 보냅니다     

갑오년 새해 가내 두루 평안 하시고 

건강하시며 영원토록 행복하세요 .

                    

지금 이 홈 사이트는 제가 죽은 후 2037년까지

계속 유지되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여러 분들의 능동적 참여가 앞으로 송곡동 별좌공파자손들 인터넷망 구축과 발전을 기대합니다.

         010-5356-2467   이관희  2244

 

2014년은 우리 조상님이 이 마을에 처음 자리 잡으신지 무려 500년 가깝습니다.
계산 해 보니 교위공(葳壽)은 창신교위(彰信校衛-정4품)관직을 흔쾌히 버리시고(投綬) 
예천 사고(醴泉 砂皐-지금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송곡동)으로 자리를 잡아 한양(지금의
종로구 체부동으로 짐작됨)에서 이거하신지 475년전으로 계산됩니다. 
삼형제분과 4자매를 두셨지만 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를 만나 오직 눌헌공 (응-應) 후손만 
이어 오셔서 다시 이 마을에 자리를 잡으신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참상은 지금도 호명산에  모셔진 형제분들과 여러 남매의 
묘신을 살피시면 당시의 정황을  짐작될 것이나 다행이 자손들이 
마음을 모아 잘 보존하고 그때의  힘들었던 상황을 마음에 새기면서 
계속이어 가내의 교훈으로 삼고  은인 자중하며 지혜롭게 어지러운
세상들 잘 헤치시고  오늘의 이 보금자리를 이루고 또 지켜 오신것입니다.
 
새로운 자료를 검토한 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조상님 가솔 모두는 삼척공파 북백(昌庭)공 가솔과
함깨 문경 금정산 토굴에서 은거하시면서 갅신히 난리를 피하셨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함께 이 곳을 방문하여 조상님들을 지켜 주신 산신에게 제사를 올려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사진=별좌공파종택 2002년도 사진영)
  
연안이씨는 4대종파이나 그중 가장 큰 대종을 이루는 종파가 고려 태자첨사를 지내신 분(襲습.洪홍.)을 중시조로하는 태자첨사공파(太子詹事公派)이며 이 중시조에 이어 6대조이신 의정공 (元원.發발)으로 대를 이어 온다.
의정공에이어 그 가계를 도표로 설명한다
 
의정공--- 강호공(貴귀.齡령)--
          └ -판서공(貴귀.山산)--춘천부사공(續속)--참의공(根근.健건)--연안군(仁인.文문)--별좌공(광)--교위공  (葳위.壽 수)
 
 
別坐公 (李 垙)께서는 용인구수동에 모셔져 있는(던) 의정공(元發), 판서공(貴山)과 춘천부사공
(續), 참의공(根健),연안군(仁文) 선영을 돌보시면서 그 곳(용인구수동)에 안장되셨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달아 일어나서 생사를 가름하는 시절인지라 대행하게도
기록에서 나마 경기도 용인시 구수동에 모셔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애오와공( 정기-鼎基)공께서
봉분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산을 지키는 자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아 찾지 못하자 우선 경북 홈병산에
단소를 세우게 되었다는 기록을 찾게 된 곳입니다.
 
(그후 아우인 연성군(李 坤)이 반정공신이 됨에 받은 채읍 판교에다
춘천부사공과 참의공,연안군 묘소를 이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훗일 만일을 위해 참고로 적어 둠. 이 기록은 연안군 묘소를 
이장할 당시(2006년 - ) 각 묘의 위치와 내부상태와 여러거지 정황에서 판단된 증거도 있음으로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계속 작업할 것입니다)
 
500년이면 참으로 오랜 세월입니다.
그 오랜세월에 수 많은 난리와 전주이씨 전단의 폭정과 당파싸움에 찌들린 정치의 질곡을
감내하면서 한자리에 온전히 보금자리를 지켜 오셨다는 것은 신의 가호기 필연코 따랐을 
것으로 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 온 마을이며 정든 고향입니까? 
지금 이마을에서 인연을 이어 태어나신 분들이라면 모두 별좌공 단 한분의 후손이시며 
그 후손이 지금 전국에 그리고 해외에도 곳곳에 생존해 있는 수가 무려 500여명 을 넘고 있고
이 숫자는 출가하여  자손을 생산한 분과 그자손들이 포함되지 않은 수 임을 감안 한다면
더욱 번성한 모습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지금도 한자리에다 모아 두고 있으니 각자 살펴 보시면 이해 하실 것입니다.
(한마당 한자리를 클릭하십시요)   
     만일 사이트가 느릴 경우 클릭하세요(개별분활)
 
그리고 송곡사람들 끼리 서로가서로의 소식을 나눌 수 있는 활성화된 자유로운 마당도
꾸며저 있으니 각자 신분을 확인 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바 방법은 이름과
소속(계보=누구의 자손이란 표시)을 밝혀주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모두 인증받아
참여할 수 있게됩니다.
 
(이는 제 삼자가 읽거나 쓰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한 방법임)약간 번거롭더라도 참여의
뜻을 가상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송곡사람끼리 주고 받기) 
 
---자료 준비 되는대로 계속 쓰겠습니다.   (2037년 까지)

                  아래는 송곡동노래말 3절에 포함된 글귀입니다. 곧 조상님들이 전해 주신 마음다짐입니다.

연리수 그늘아래 함께 하면서(團結-단결) 앞으로 후손들이 온 세계를 누비더라도 부리는 잊지 말도록

영어와 중국어로도 별기합니다.

With a shade under Yeonrisu (- unity)

與傘蔭下連理樹 ( -團結)

베풀고 보살피며 보듬어 주고(協同-협동)

Give alms, attend to give,protection (- Cooperative)

施捨,出席給予保護(-協同)

 

새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면서(幸福-행복)

Living up to a new and beautifully (- Happiness)

住到一個新的絢麗( -幸福)

 

보람찬 내일위해 다듬어 가세(發展-향상)

More worth-while joined smoothed for tomorrow (- improvement)

更值得關注,而加入平滑明日( -發展